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3월 14일 오후 5시. 여느 때와 같이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에서 아무것도 못한다. 뭔가 불편한 자세 때문에 잠도 못자고, 토나올 것 같아서 PMP나 책을 보지도 못한다. 그냥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버스를 탄지 1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한 무섭게 생긴 중년 남성이 탔다. 그 남성은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는 검은색 배낭을 손에 들고 힘겹게 올라탔다. 버스 입구 계단을 겨우 올라서자마자 바로 한 숨을 쉬고 허리를 편다. 뒤에 다른 승객이 타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 서있었고, 뒤의 승객들은 좁은 공간을 헤치고 들어왔다. 버스가 출발한다. 갑작스럽게 무서운 중년 남성이 말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 우리나라 600년 간의 혼이 담긴 숭례문이 타버렸습니다. 태안에는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물가는 갈수록 오르고 있습니다. 실업률도 오릅니다. 등록금은 하늘 끝에 있어서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절대 서민을 위한 정부가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자주 볼 수있는 잡상인 혹은 전도하는 사람같이 한 숨도 안쉬고 끊임없이 말을 해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그 중년 남성이 들고있는 까만 배낭. 끝도 없이 나오는 사회비판. 갑자기 그 중년 남성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혹시... 테...러..??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휴대폰을 꺼내서 '112'를 눌렀다.

저는 XX교도소와 XX교도소에서 수감되다가 7년 전에 '탈옥'했고, 지금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탈...옥...? 공포심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탈옥을 잘 못들은 듯해서 긴가민가 하고있을 때에도 그 남성은 탈옥이라고 두 차례 정도 더 말했다. 더 있다가는 큰 일 면치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남성이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반전!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1000원 짜리 방향제! 커피, 레몬, 오렌지 향이 있구요! 단돈 천원 한 장에 악취를 없앨 수 있습니다! (가까이 앉은 승객에게 방향제를 가까이 보여주며) 자! 한 번 맡아보세요.

 정말 심장떨려서 콩닥콩닥 하고 있었는데, 그 콩닥콩닥에 비해 너무 허무하게도 방향제를 판매하는 것이었다.결국 상황정리 해보자면, "7년 전에 석방이 되었는데, 요즘 사람 한 숨 나오게 하는 일들이 많고, 나 또한 불경기로 인해 취업이 불가능하니 방향제를 팔려고 한다."는 것이다.

버스 잡상인??

 지하철과 버스의 차이점이라면 많이 있지만 그 중에도 중요한 것은 잡상인과 걸인이 없다는 것이다. 지하철은 한 번 요금을 지불하고 3시간 내 라면 어느 곳을 돌아다니며 판매해도 추가비용이 들지 않지만, 버스는 매번 추가 요금을 내야 했기에 잡상인이 없었다. 하지만 환승 할인이 적용되기 시작하고, 더구나 경기도 버스의 환승은 서울버스와는 다르게 짧은 거리라면 추가요금 100원도 내지 않기 때문에, 이 버스, 저 버스 옮겨 가며 판매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경기도 버스 내부에 붙어있는 게시물에는 환승할인은 2회만 적용 가능하다고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2회 이상 환승할인이 적용된다.(4번까지는 써보았는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결국 버스카드 한 장으로 한 번의 요금만으로 판매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버스 잡상인이라는 말이 아직 어색한데, 조만간 적응될지도 모르겠다.

'성스러운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스 잡상인에게 느낀 공포.  (2) 2008/03/31
무한도전 2008 캘린더 개봉기  (0) 2008/01/08
Posted by hentol